유시민 항소이유서 리뷰

유시민 항소이유서 리뷰

한번 읽어보자. 생각한 후 6개월이나 지나서 읽고 끄적이는 이유는 항소문치고는 상당한 길이 때문이다. 그래도 재미없는 어휘들을 사용한 원고지 100장 길이의 글을, 할 일 없는 방학의 대학생까지 읽게 만드는 것으로 보면 상당한 능력같다. 그런 글이 나온 이유중 하나는 유시민이 똑똑한 서울대생이라는 것부터겠지만, 매년 20000개의 명문이 쏟아지지 않는 걸로 봤을 때, 다른 원인도 있어보인다.
항소이유서는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특별성의 원인을 개인이 아니라 시대에게 돌린다. 명백한 잘못들이 판치는 곳에서 정의를 가장 크게 추구하는 '시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지만, 이는 동시에 왜 지금은 이런 글들이 쓰이지 않는 이유도 말해준다. 또한 글의 마지막 문구로 유명한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의 앞에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는 가정이 붙어있다는 것도, 불의가 없는 시대에서 큰 의지를 가지는 것의 어려움을 내포한다.
항소문에서는 도덕적이지만 합법적이지 못하다 치부되는 본인의 행동과, 비도덕적이지만 합법적인 행동이라는 국가의 행동 사이를 구별하지만, 그런 구분은 그때와 같은 명백하고 단순한 도덕위반에서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사법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이 엇갈리는 사태에서 도덕이 우선되는 건 정당하지만, 예전보다 복잡하고 세밀해진 현대에서 그 중에 어떤 것이 우선되는 엇갈림인지, 정인지 부정인지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명백한 잘못들이 생기지 않는, 발전된 세상에서 옳음을 위한 동기부여를 받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사소한 잘못들은 관심을 얻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도 다른 놀이거리를 찾게 된다.
도덕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규칙만 고려하여 판단하려는 무책임함을 지니더라도, 명확함 없는 도덕은 판결에 의해서도 추앙받지 못할 것이기에 개인은 책임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사태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도덕향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과, 모두가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려하는 윤리의 공백상태를 유시민은 비판했지만, 결정되는 진실이 참인지 거짓인지조차 모른다면 사회에 대한 목표는 모두에게 의미가 적어질 것이다.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관심을 갖는 재판관이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재판관'이 되려면 우선 정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정의는 독재자의 의지다'라고 비판받는 과거정권에 비해 현실의 정의는 너무 복잡해졌고, 그에 따라 큰 목표를 품기 어려워진 현실에서는 차라리 작은 잘못들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해보인다.
방학중에 베짱이마냥 놀아다니는 것을 합리화하려는, 또 대부분이 끝을 보지 않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 입장에서 긍정적으로도 결론을 찾아본다면, 동기는 헌신을 위해서보다는 의지의 자유를 원함으로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본인에 의해서보단 전체의 생각에 맞추기 위한 동기부여가 큰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지만, 글 자체가 목적이 아닌 동기를 위한 글이기에 추가할 수 있는 말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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