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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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lae ChoSeongla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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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Oct 30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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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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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Apr 6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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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리뷰들이 이 작품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개인적인 스토리와 독자 개인들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 영화라고 해석한다. 대부분의 해석에 동의하지만 이 리뷰에서 그보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서전적 의미 뿐 아니라 일본 사회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있다는 가정으로 작성해보았다.
우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배경은 1944년부터 전쟁말기를 그린다. 이는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벌이던 시기이고 도쿄 공습으로 인해 죽은 어머니, 비행기 조종석 보호창문을 만드는 아버지의 공장 제품으로 전쟁은 지속적으로 환기된다. 그 사이에서 주인공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아버지와 시골로 내려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의 주 무대는 탑 아래의 심연에서 일어난다. 심연은 거대한 바다 위의 죽은 이들이 많은 즉 죽음이 만연하는 세상이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수많은 죽음과 드넓은 바다, 이곳을 태평양 전쟁의 한 가운데라고 여길 수 있다. 이곳에서 팰리컨들은 꿈꾸는 민간인 와라와라들을 학살하고, 주인공이 앵무새에게 먹힘당할 뻔한 것은 태평양전쟁 당시 치치지마 식인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큰할아버지의 유품인 페리제독의 흑선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큰할아버지의 세계는 일본 막부 이후로 제국화된 일본을 나타낸다. 또한 탑의 근간인 돌이 메이지 유신 직전에 하늘에서 떨어진 돌은 서구 문명과의 접촉을 의미한다. 그리고 탑 안에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수많은 블록(서구의 기술들)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큰할아버지는 블록들을 이용하여 세상을 만든 것처럼, 미국에 의해 개항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 이후 새로운 체제를 정립한다. 그러다 제국화된 일본과 불안정해질 대로 불안정해진 세상은 무너진다. 이에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다시 악의없는 블럭들을 쌓아 체제를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질문에 주인공은 거절하고 붕괴를 막지 않는다. 모두 현실세계도 돌아오면서 펠리컨과 앵무새들 또한 전쟁이 아닌 현실에서는 군인이 아니라 누구와 다를 바 없는 일반적인 새들 곧 시민으로 돌아간다. 군부를 의미하는 세상이 무너지며 곧바로 영화 안에서의 전쟁도 끝이 난다.
영화를 미야자키 하야오가 살아온 삶의 비유로 자전적인 의미에 담는다는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있다. 하지만 해석이 여러가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작품에 담을 수 있는 의미도 많다고 생각하기에 처음 영화감상에서 느꼈던 부분을 공유해본다. 작품의 시사회에서 하야오 감독이 시사회에서 말했다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라는 발언은 너무 당연하게도 정말 본인이 만든 영화의 의도를 몰라서 한 말이 아니다. 일본의 정서상, 또 하야오감독의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일본의 과거를 반성하고 군부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말하기가 어려웠을 뿐이 아닐까 하고도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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